가정폭력 희생자들의 특징중 한가지는 대체로 커뮤니티에서 고립되어 있고 그 이유로 그들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가 생겨난다는 점입니다.
가정폭력을 오랜 세월 동안 겪어온 분들일수록 친구도 없고 바깥 출입도 많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설사 맞벌이를 하는 일하는 엄마라고 할지라도 가정폭력이 있는 가정의 엄마들은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들이 많지 않고 "신비스러운" 존재인 분들이 많습니다. 전업주부이건 일하는 엄마이건 공통적으로 집안 얘기를 주변에서 거의 모르고 있다가 그야말로 죽게 생긴 지경에 이르러서야 주변 사람들이 그 가정에서 빈번히 일어난 가정폭력 사건에 대해 비로소 전해듣곤 합니다.
또한 이렇게 고립이 되고 가정사를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주변 사람들은 가정폭력 가정의 부부에 대해 여러가지 오해를 하게 됩니다.
앞서 설명드렸듯이 가정폭력은 싸이클입니다. 한없이 잘해주는 기간이 지나는 동안 가해자의 마음 속에서는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처럼 피해자와 무관한 분노가 끓어오르다가 어느 싯점이 되면 사소한 일에도 그 분노를 터뜨리면서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것이 가정폭력 가해자들의 흔한 행동양상입니다. 물론 가해자들의 생각 속에는 그 모든 이유가 다 피해자가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아내가 청소를 잘 못해서, 아내가 음식의 간을 제대로 못 맞춰서, 아내가 제 시간에 퇴근을 하지 않아서, 아내의 눈빛이 맘에 들지 않아서, 또는 아내가 소리를 질러서...등등.
가해자들이 열거하는 수많은 핑계들 중 어느 하나도 폭력을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누군가의 연약한 점이나 부족한 점이 폭력을 정당화해준다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남아나지를 못하겠지요.
가정폭력 후 가해자인 남편은 한없이 부드럽게 무슨 투정도 다 받아주는 척을 하고 아내는 그 시기에 남편에게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패턴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부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 가정의 사정을 제대로 모른 채 다정다감한 (?) 남편을 한없이 밀어내는 듯한 퉁명스러운 아내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좋은 남편을 조금도 감사하지 못하는 주변에서 못된 아내로 찍히고 마는 거지요. 남의 말하기 좋은 사람들에게 이들은 아주 좋은 얘깃거리가 됩니다. 이렇게 오해가 시작되면 실질적으로 피해자인 아내는 커뮤니티에서 더욱 고립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시시콜콜 가정사를 다 풀어놓자니 부끄럽기도 하고 내 얼굴에 침뱉기라는 생각에 아무 말도 못하게 되고 차라리 마음의 문에 빗장을 걸어잠그자 하고 결심을 하게 되어 더욱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맙니다.
때로는 피해자들의 친정부모님들도 이런 오해를 쉽게 하십니다. 장인 장모에게 너무나 극진하고 처갓집 식구들에게 금전적으로나 마음으로나 후하게 대하는 사위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그런 사위를 늘 못마땅하게 대하는 딸에 대해서는 혀를 끌끌 찹니다. 심지어는 딸이 맞고 산 것을 알게 된 후에도 '네가 성질을 부려서 그런 것 아니냐"는 말로 딸의 마음에굵은 대못을 박기도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오프라인은 물론이고 많은 온라인 포럼에서도 가정폭력 희생자들을 그다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그렇게 맞으면서 왜 여태까지 참고 살았냐' '뭔가 좋은 게 있었으니 여태까지 같이 있은 것 아니냐' '무언가 맞을 짓을 했으니 맞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게 왜 성질을 건드리냐' '그렇게 맞고 살 때에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을 것이다' 등등으로 맞고 사는 희생자들을 마구 깍아내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비난은 여자분들이 더욱 많이 하는 편입니다.
또는 '아무리 봐도 맞고 살 사람이 아니다' '혹시 여자가 먼저 때린 건 아닌가' '남편의 얼굴에 손톱 자국이 있다더라' '맞지만 않고 자기도 같이 떄렸다더라' 등등으로 가정폭력에 희생된 아내들의 방어행위마저도 도마에 오르기도 합니다.
언젠가 어떤 포럼에서는 남편이 목을 졸랐다고 하는 피해자를 오히려 비난하는 수많은 댓글들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가정폭력 가해자들의 여러가지 폭행 중 목을 조르는 행위는 악질적인 행위로 손꼽힙니다. 말 그대로 살인 미수에 달하는 행위이고 목을 조른 채 몇 분만 지나도 피해자는 의식불명 상태가 되기 쉽고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이유로 잘못하면 심각한 두뇌손상도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가정폭력범들 중 목을 조르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고 대부분 우발적인 행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여러가지 징조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심각한 행위인데도 수많은 여성분들이 입에 담을 수 없는 갖은 비난을 쏟아붓는 것을 보면서 언제나 놀랍니다. 더욱 많은 위로가 필요하고 감싸줘도 모자랄텐데 진작에 집에서 나오지 못한 것으로 욕을 먹는 것은 이들 피해자들에게는 그야말로 2차적 폭력입니다.
가정법 중에서도 아주 작은 부분인 가정폭력 사건들을 주로 담당하는 저로서는 피해자들을 가해자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일보다 더욱 힘든 것이 그들에게 쏟아져내리는 말도 안되는 비난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비난들은 여자분들이 더욱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런 비난들이 때로는 피해자들을 변론하는 변호사인 저에게도 쏟아집니다. 뭐하러 그런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가...많은 분들이 의아해하면서 물어오시기도 합니다.
아내를 때리고 정신적으로 혹은 언어로 학대하는 것은 범죄이고 폭력입니다. 그러나 그 폭력에 맞서지 못하고 무서워서 도망쳐나오지도 못한 채 아이들과 함께 볼모가 되어 지낸 것은 범죄가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사실을 우리는 때때로 너무 많이 돌려서 생각하는 건 아닌지요. 폭력범은 댓가를 치뤄야 하고 피해자는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일에 대상이 바뀌면 안되지요.
가정법을 하는 변호사로서 가장 많이 생각해보는 말이 바로 "오죽하면" 이란 말입니다. 오죽하면 그렇게 맞고 지냈을 것이며 오죽하면 도망도 못 나오고 그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았을까요. 그 '오죽하면' 의 세월을 지나보내고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으로 간신히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사회는 이들의 '무방어'를 무조건 비난하고 손가락질을 할 것이 아니라 좀더 따뜻하게 보호해줘야 합니다. 일단 어린 아이들과 엄마의생명과 안전이 보장된 후에 시시비비를 가려도 늦지 않습니다. 그 이전에 섣불리 잣대를 들이대어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일은 그들의 가해자가 오랜 세월 여러가지 모양의 폭력으로 그들을 괴롭혀온 것 이상의 폭력이고 조종이라고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