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폭력 접근 금지 명령의 종류: (2) 임시명령 (Temporary Restraining Orders)
가정폭력 접근 금지 명령 신청서류들을 작성하시고 법원에 파일하시고 나면 1-2일 사이에 판사가 서류들을 읽어보고 난 후에 (1) 임시명령을 줄 것인지 (2) 늦어도 3주일 이내에 심리 공판일은 언제로 할 것인지가 정해집니다.
임시명령은 심리공판일까지 유효한 보호장치로서 피해자가 제출한 서류에서 요구한 명령들의 종류에 따라 전부 다 주어질 수도 있고 일부분만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피해자가 요구한 명령들중 판사가 임시명령에 포함하지 않은 것들은 대체로 피해자의 진술서에 나타난 증거들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설사 임시명령 시에 주어지지 않았어도 심리공판 시에 증거와 진술을 통해 보정할 수 있다면 그때에 다시 주어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임시명령을 줄 때의 선별 기준은 reasonable proof of past act or acts of abuse 인데 다시 말하면 담당 판사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과거에 학대행위가 있었다고 의심이 가게 하는 증거를 신청서류들과 함께 제출한다면 심리공판일 전까지 유효한 임시 명령을 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상식적" 이란 말이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모호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말 그대로 상식적인 증거를 얘기합니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 접근 금지 명령 신청서에 달랑 두 세줄의 진술로 "남편이 싸우다가 여기저기 마구 때렸고 상처도 있다" 라고만 적어서 낸다면 판사가 보았을 때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의혹이 생기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간략하더라도 6하 원칙에 의해 누가, 언제, 어디서, 왜 , 어떻게, 무엇을 했다고 진술하고 경우에 따라서 상처 부위의 사진을 같이 첨부한다면 중분히 의심이 갈 것이고 그 의심만으로 임시명령을 줄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그 의심은 임시명령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고 심리공판에서는 간단한 의심보다는 조금 더 상세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2016년 6월 20일 월요일에 우리집의 거실에서 남편과 말다툼을 하던 중 남편이 갑자기 유리잔을 집어들더니 심한 욕을 하면서 나를 맞출 목적으로 나를 향해 던졌고 그게 벽에 부딪쳐서 깨져서 산산조각이 난 채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5살짜리 우리 아이가 있었는데 그 광경을 보고 겁에 질려 울기 시작했고 남편은 아이가 보고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 달려와 나의 목을 졸랐다. 그때 나는 임신 중이었다. 그리고 목졸려서 난 상처 사진 여기 첨부했다" 라고 하면 당연히 학대 행위에 대한 의혹은 물론이고 일목요연하게 상황 설명이 되었기 때문에 임시명령을 받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여기에서 "과거의" 학대행위란 말 그대로 과거의 행위를 말합니다. 물론 가장 최근일수록 좋겠지만 제가 맡은 사건들을 통해 보았을 때 일 이년 전의 사건들이라고 해도 그 행위의 심각성이 크고 그 행위로 미루어보아 현재에도 피해자에게 신변의 위협이 생겨날 수 있다고 판단된다면 비록 오래전의 사건이라고 해도 임시명령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때때로 남편이 체포되어 형사법원에서 criminal protective order 가 나와있는 경우에 그것만 믿고 가정법원에는 아무 것도 신청하시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가정법원에 오셔서 가정폭력 접근 금지 명령을 당연히 신청하셔야 하고 보호받을 사람들 명단에 아이들 이름을 넣으시고 양육권과 방문교섭권 문제를 해결하셔야 합니다. 형사법원에서 주는 보호명령은 피해자 당사자만 보호받는 명령이기때문에 아이들을 보호하는데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정폭력 상황에서 가해자들이 가장 쉽게 사용하는 보복의 도구가 안타깝게도 아이들인 것을 생각하셔서 이 부분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청서도 약하고 함께 제출된 진술서의 내용도 약해서 임시명령이 주어지지 못하는 경우에 판사는 임시명령이 거절된 이유를 밝혀야 하고 임시명령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심리공판일을 정해주어서 그날 법원에 출두해서 다시 한번 기회를 가지게 해주어야 합니다.
임시명령에는 몇가지 세분화된 명령들이 포함됩니다.
1) Personal Conduct Order (가해자의 행동을 제약하는 명령)
이것은 임시명령 기간 동안에 가해자로 하여금 피해자에게 신체적 폭력은 물론이고 협박이나 스토킹 등의 비신체적 학대 행위도 금하게 하고 피해자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으로 누구를 통해서이든지 연락을 취할 수도 없게 하고 더불어 피해자 주변에 일정거리 안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명령입니다.
2) Move-out order (거주지에서 나가게 하는 명령)
임시명령을 통해 가해자로 하여금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던 집에서 나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명령이 내려지면 가해자는 일단 명령서를 송달받은 즉시 나가야 하고 소지품을 챙겨나갈 여유가 없었다면 추후에 법원에서 Civil Standby (경찰이 나와서 지키고 서있는 가운데 집에 들어가서 소지품을 챙겨가지고 나오게 하는 것) 을 통해 할 수 있습니다. 이 명령을 주기 전에 판사는 가해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경우에 피해자와 다른 동거 가족들에게 위험한 상황이 생겨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햐 합니다.
3) 애완동물 보호 명령
때때로 가해자들은 애완동물에 대한 학대나 학대 위협을 통해서도 피해자들을 학대합니다. 예를 들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네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에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XX 이를 죽여버리겠어." "그렇게 말을 안듣다가는 XX 이를 다시 보지 못할 거야." 등등의 협박을 통해서 피해자들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막기 위해 판사는 임시명령을 통해 애완동물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즉, 가해자가 명시된 애완동물 주변 일정 거리 안에 가까이 올 수 없고 애완동물에 대한 그 어떤 학대행위도 금하는 명령입니다.
4) 주소 비공개
임시명령을 받은 피해자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주소나 아이들의 학교 위치, 그리고 보호대상자 목록에 들어가있는 다른 가족들의 주소나 직장의 위치등을 밝히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가해자는 이러한 주소들을 알려고 하는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5) 재산 보호 명령
심리공판일까지 판사는 임시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재산관리와 각종 채무 이행 등에 대한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즉 심리공판을 통해 상세한 부분에 대한 판결이 나기 전까지 여러가지 재산의 사용권을 임시적으로 나누고 공과금 지불 등의 의무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중 한쪽이 이행하도록 임시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6) 공동재산 보호명령
가해자와 피해자가 부부일 경우, 임시 명령 기간 동안에 부부가 결혼 이후에 획득한 공동재산을 처분하거나 양도하지 못하게 금할 수 있습니다.
7) 보험 유지 명령
임시 명령 기간 중에는 각종 보험 (건강 보험, 자동차 보험 등) 을 함부로 해약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임시명령에 대한 보복행위를 막는 목적도 있습니다.
8) 총기 압수 명령
임시명령을 통해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가해자로 하여금 총기를 관할 경찰서에 반환하거나 합법적 경로를 통해 팔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총기를 소지한 가해자들로 인한 심각한 사고들의 발생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피해자들에 대한 부가적 보호 장치를 위한 명령입니다.
이와같이 임시명령이 주어지고 나면 피해자 (접근금지명령 신청자) 는 한시도 지체하지 말고 당장 가해자에게 이 명령서를 전달해야 합니다. 이 명령서가 전달되어야 비로소 임시명령은 효력을 발하게 되고 가해자는 심리공판일 날짜를 알고 그날 출석해서 변론을 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서를 전달하는 것은 피해자 본인이 할 수는 없고 18세 이상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대행해야 합니다. 통상 경찰에 부탁해서 전달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악질적으로 송달을 거부하고 시간을 끄는 가해자들의 경우 경찰이 끈질기게 맞서서 전달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경찰이 아닌 다른 사람을 쓸 때 아는 지인을 쓰거나 또는 수고료를 지불하고 전문 업체에 맞기는 방법이 있는데, 지인을 쓰는 것에도 위험이 따르고 저는 차라리 전문업체를 쓰는 것에 한 표를 던집니다. 이 사람들은 이게 업인 사람들이라서 몇 번이 되건 결국 가해자와 맞딱뜨려져서 송달을 마칠 때까지 밤까지 가해자의 집 앞에서 기다리더라도 결국에는 전달을 해주더군요.
임시명령의 전달은 심리공판일 5일 전까지는 반드시 마치셔야 합니다. 가해자라 할 지라도 법 앞에는 공평한 권리를 가지기 때문에 5일 전에는 통보를 받아야 그 사이에 변호사도 사고 자신의 변론도 준비라고 직정의 일정도 맞춰서 심리공판일에 법원에 출두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말 그대로 임시명령이지만 그래도 실제 장기 명령과 거의 흡사한 정도의 명령이기 때문에 일단 임시명령을 받으셨다면 그래도 조금은 안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가해자의 폭력의 정도에 따라 임시명령이란 것이 말 그대로 종잇조각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꽤 많은 가해자들이 임시명령 기간 동안에 명령 조항들을 우습게 여기고 위반을 하고 형사 처벌 단계에 가게 됩니다.
임시명령을받으셨고 가해자 측에도 송달을 마치셨다면 다음으로 깊이 생각하셔야 하는 것이 바로 가해자의 위반 사항에 대한 대처입니다. 임시명령에 포함되어있는 금기사항들을 어기는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두 번 생각하실 것도 없이 반드시 관할 경찰서에 연락하셔서 신고를 하셔야 합니다. 가해자가 하나 둘 씩 명령 조항들을 어겨도 아무런 조치도 안하시고 계시다가 심리공판일에 가게 되면 가해자들은 대부분 그런 사항들을 역으로 이용해서 피해자가 증명하려고 하는 두려움과 위협에 대해 반대되는 증거로 사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접근금지 명령 신청서에 남편이 문자 멧세제를 통해 아이들을 뺏겠다고 위협했고 나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고 써서 임시명령과 심리공판일이 정해졌다고 합시다. 그런데 임시명령 기간 중에 남편이 나에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멧세지를 보냈을 때 나도 같이 답을 하면서 서로 화해흫 하고 심지어는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허락해주고 지내다가 심리공판일에 법원에 간다면 아마도 남편은 그간의 상황들을 증거로 써서 접근금지명령이 장기간 내려지지 못하는 것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호장치를 원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하게 마음이 변하지 말고 거기에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피해자들로부터 일관성이 깨지는 모습을 많이 보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런 비일관성이 임시명령과 장기명령을 뒤집는 도구로 쓰여서 피해자를 공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