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폭력 접근 금지 명령의 종류: (1) Emergency Protective Order

Emergency Protective Order (EPO) 는 경찰 (쉐리프나 하이웨이 패트롤 포함) 에 의해 발행되는 임시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판사가 허가를 내렸을 때에만 유효한 명령인데 이를 위해서 법원에서 판사들이 돌아가면서 당직으로 순번을 정해 그때 그때 가정 폭력 사건에 파견된 경찰에 의해 요청되는 EPO 를 살펴보고 필요할 때에는 서명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EPO 는 24시간 7일 내내 받을 수 있는 명령입니다.

담당 경찰이 그 자리에서 EPO 를 작성해서 판사의 허락을 받은 후 피해자에게 건네주고, 즉시 그 임시 명령을 경찰 시스템 (CLETS) 에 입력해서 모든 경찰 시스템에 가해자의 인적 사항이 입력됩니다. 이렇게 입력이 되고 나면 위반 사항이 발생할 때 모든 경찰이 손쉽게 가해자의 인적 사항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로 가정 폭력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을 때 경찰이 출동해서 상황을 조사하고 내리게 되는 명령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건이 며칠 지난 후에 피해자가 경찰에 찾아가 신고를 했을 경우에도 내려집니다.

EPO 가 내려지기 위해서는 사건 현장에 파견된 경찰이나 신고를 접수받은 경찰이 가해자의 가장 최근에 보여준 학대 행위를 통해 피해자가 가정폭력으로 인한 즉각적인 위험에 처해 있다고 판단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판단은 물론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져야 하는 판단이기에 큰 증거가 없어도 그 순간에 모여진 여러가지 정황 증거를 통해 얻어지는 것인데, 이를테면 그 상황을 수사하는 정상적인 경찰이 보기에 위험 상황이라는 판단만 얻어지면 가능합니다.

가정법원에서 내려지는 가정 폭력 접근 금지 명령과는 달리 EPO 는 대체로 신체적인 상해가 있을 때 가능하기에 정서적 경제적 학대를 가지고는 받기 어렵습니다.

EPO 가 내려지는 판단의 기준은 학대, 납치 혹은 스토킹에 대한 즉각적인 현재의 위험 (reasonable grounds of immediate and present danger of abuse, abduction or stalking) 입니다. 어떤 분들은 가해자가 체포되어 감옥에 갔으니 즉각적인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여 더이상 위험이 없다고 믿으시고 EPO 를 받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시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설사 체포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다고 해도 보석금을 내고 언제 감옥에서 나오게 될지 알 수 없고 그렇게 나와서 어떻게 보복행위를 하게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EPO 를 받아놓지 않으면 감옥에서 나오자 마자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더 심한 폭력을 가하기도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EPO 에는 다음과 같은 명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행동을 제약하는 명령 (더이상 학대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명령), 집에 못 들어오게 하는 명령, 피해자로부터 일정 거리를 떨어져 있게 하는 명령.

2)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낳은 아이들을 임시적으로 보호하는 명령

3) 유괴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명령

4) 노인학대의 피해자를 보호하는 명령

EPO 는 통상 5-7 일 동안 유효하며 명령이 발행된 그 순간부터 유효합니다.

이렇게 EPO 가 발행되고 나면 가해자는 어떤 경우에도 총기를 소지할 수 없고 현재 소지하고 있는 모든 총기를 경찰에 반환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항을 위반하면 형법에 의해 최고 1년까지 감옥에 갈 수 있고 $1,000 까지의 벌금도 함께 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저를 찾아오신 분 중에 경찰이 EPO를 발행하려 하는데 막무가내로 반대하면서 절대로 안받겠다고 하고 남편을 체포하지 말아달라고 아우성을 치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매우 심각한 폭력 상황이라 경찰은 남편을 체포함과 동시에 여러 번에 걸쳐 EPO 의 필요성을 설명했는데 이 분이 거부를 하신 거지요. 그 가정에 어린 자녀들이 둘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자녀들이 엄마 아빠의 폭력 현장을 고스란히 지켜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경찰은 Child Protective Services 에 따로 보고를 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심한 가정 폭력 상황이고 그 자리에서 체포된 남편은 틀림없이 보석으로 곧 나와서 집으로 들이닥칠텐데 그 위험한 상황을 전혀 내다보지 못하고 그로 인해 아이들에게도 미칠 위험을 막으려는 노력을 하지 못하는 엄마라고 보고가 들어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정폭력으로 피해를 본 것도 기막힌 상황인데 부모자질이 부족한 엄마 (unfit parent) 라는 명목 하에 심도깊은 조사까지 받으면서 수많은 눈물을 흘리고야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CPS 에서 조사하는 부분은 가정폭력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점, 그리고 앞으로도 같은 상황이 왔을 때 꼭같이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심한 폭력을 저지르는 남편을 저지하고 피해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할 능력이 안 보이는 점 등이었습니다.

어찌보면 한국 문화나 한국 법과 너무나 다른 미국법으로 인해 고생을 한 것일 수도 있고, EPO 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일어난 일일 수도 있지만, 어린 아이들을 가진 엄마로서 아이들을 위험에서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먼저 생각해본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따로 주제를 만들어 자세히 쓸 예정이지만, 간단히 설명드린다면 캘리포니아 법에 의해 가정폭력은 아동학대와 동일한 행위입니다.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아빠도 문제가 되지만 가정폭력 속에 고스란히 아이들을 두고 거기에서 벗어날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 가운데 아이들에게 정신적 신체적 해가 간다면 엄마도 책임을 면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